2000년 3월, 마법사 한 명이 서버 경제를 흔들었던 날
2000년 3월, 마법사 한 명이 서버 경제를 흔들었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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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3월, 팝리니지에 올라온 “이 마법사, 진짜 사람 맞음?”이라는 제목의 글은 곧 리니지 서버 전체에 충격을 던졌다. 사건의 주인공은 ‘아룬델’이라는 이름을 가진 고레벨 마법사였다. 그는 평범한 유저처럼 보였지만, 하루에도 수백 개의 고급 주문서를 시장에 풀어내며 눈에 띄기 시작했다.
당시엔 고급 주문서 한 장이 몇만 아데나에 거래되던 시절이었고, 수요도 높았기에 가격은 항상 치솟는 중이었다. 그런데 아룬델이 나타난 이후, 가격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진 것이다. 팝리니지에는 곧 “이건 시장 조작이다”, “어디서 나오는 거냐”는 추궁 글이 잇따랐고, 경제 관련 분석까지 등장하기 시작했다.
많은 유저들은 처음엔 아룬델이 거상급 현질러라고 생각했지만, 곧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그는 사냥터에서 사냥하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어디선가 주문서를 가져와 팔기만 했다. 누군가는 “버그를 이용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고, 상황은 점점 커졌다.
결국 몇몇 유저가 협동해서 아룬델을 추적했고, 한밤중에 그가 오렌 던전의 외진 구역에서 혼자 사냥하는 장면을 포착했다. 놀랍게도 그는 같은 몬스터를 무한 반복으로 잡고 있었고, 몬스터가 떨어뜨린 주문서를 일일이 수집하고 있었다.
그 장면이 팝리니지에 스크린샷과 함께 올라오면서, 유저들은 다시 경악했다. 아룬델은 버그도, 현질도 아니었고 단지 ‘AI처럼’ 효율적인 행동만 반복한 유저였던 것이다. 사람들은 그를 ‘자동사냥의 인간 구현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심지어 그의 매크로 같던 행동은 수작업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하루 18시간씩 반복 사냥”이라는 미친 루머까지 퍼졌다. 아룬델은 이에 대해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질문에도 전혀 대답하지 않는 무반응 유저로 남았다.
며칠 뒤, 그는 갑자기 모든 주문서를 단 한 장도 남기지 않고 상점에 전부 팔아버렸고, 그날 서버의 경제는 한순간에 뒤흔들렸다. 주문서 가격은 다시 급등했고, 많은 유저들이 큰 손해를 입었다.
이 사건 이후 팝리니지에서는 ‘아룬델 현상’이라는 단어가 생겼고, 게임 내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비정상적인 행동을 설명할 때 종종 인용되곤 했다. 지금도 마법사가 대량의 아이템을 들고 다니면 유저들은 이렇게 말한다.
“혹시 아룬델 후계자냐?”
“야, 팝리니지에 제보해라. 또 시작됐어.”
“그 사람… 진짜였을까?”